2007. 6. 26. 09:08
남한산성
김훈 지음/학고재

남한산성은 내게 참으로 익숙하고 친근한 장소이다.
초등학교(내가 다니던 시절엔 물론 국민학교였다) 시절, 소풍을 가면 항상 남한산성을 향했고
주말의 가족 나들이에도 남한산성은 필수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역사적 되새김은 없었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내게 또 다른 '남한산성'을 건네주고 지나갔다.

청의 군대는 조선의 매운 겨울을 따뜻하게 내려와 남한산성 앞에 진을 쳤고,
조선의 조정은 날카로운 겨울을 맞아 조그만 쪽방으로 숨어들었다.
쪽방에 숨어든 왕실과 신료들은 싸울 생각이 없었다.
허나 그들의 말은 전쟁(戰)과 화친(和), 지키기(守)의 경계를 오갔고, 임금은 선택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답보다 중요한 것은 명분이고 부질없는 예(禮) 였다.

삶을 택하기 위해 군병들은, 민초들은 성을 넘었다.
성을 넘었던 민초 중 어떤 이들은 생(生)을 위해 성안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생(生)이지 예(禮)도 명분도 아니었다.

임금이 출성을 택하던 봄에도
신료들은 역적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당하나 당상이다 다 그러했다.
최명길과 함께 선택되어진 3인의 당하들도 그러했다.
차라리 죽음이 나았다.

임금은 최명길과 역(逆)을 도모했다.
최명길이 마땅히 따랐다. 그는 처음부터 역적이었다.
당하들도 당상들도 그의 죽음으로 청을 막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남한산성에 들어오는 길 부터 임금과 최명길은 함께 역(逆)을 도모했다.

남한산성에서의 출성은 '삼전도'의 치욕으로 결말을 맺는다.
하늘로 솟은 청의 황제(칸)에게 임금은 치욕으로 맞댄다.
임금의 가솔들이 청의 황제와 함께 청으로 들어갔고,
가는 길에 조선의 백성들이 그들을 배웅했다. 열렬히. 매우 열렬히.

임금은 도성으로 돌아갔다.
민초들도 제 길로 갔다.
남한산성을 떠났던 서날쇠도 산성으로 돌아왔다.
이시백이 도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상헌은 강화로 향했다.

그렇게 남한산성을 돌아왔다.

김훈은 책의 표지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1.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
2.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소설은 그저 소설로만 읽히지 않았다.
물론,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할 수 없었다. 김훈은 그러한 여지 조차 주지 않았으니.

책에는 여백이 없었다.
생각보다 두터웠지만, 책은 생각에 여백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서문에 남겨진 김훈의 말로 마무리를 하려 한다.
김훈의 말은 김훈으로서가 아니라 최명길로 더 많이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말로서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 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으리."


남은 것은 책을 읽는 또 다른 눈과 생각의 몫이겠다.
내게 남한산성에 대한 역사적 되새김을 남긴 것 처럼.
Posted by 푸른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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