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26. 09:08
남한산성
김훈 지음/학고재

남한산성은 내게 참으로 익숙하고 친근한 장소이다.
초등학교(내가 다니던 시절엔 물론 국민학교였다) 시절, 소풍을 가면 항상 남한산성을 향했고
주말의 가족 나들이에도 남한산성은 필수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역사적 되새김은 없었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내게 또 다른 '남한산성'을 건네주고 지나갔다.

청의 군대는 조선의 매운 겨울을 따뜻하게 내려와 남한산성 앞에 진을 쳤고,
조선의 조정은 날카로운 겨울을 맞아 조그만 쪽방으로 숨어들었다.
쪽방에 숨어든 왕실과 신료들은 싸울 생각이 없었다.
허나 그들의 말은 전쟁(戰)과 화친(和), 지키기(守)의 경계를 오갔고, 임금은 선택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답보다 중요한 것은 명분이고 부질없는 예(禮) 였다.

삶을 택하기 위해 군병들은, 민초들은 성을 넘었다.
성을 넘었던 민초 중 어떤 이들은 생(生)을 위해 성안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생(生)이지 예(禮)도 명분도 아니었다.

임금이 출성을 택하던 봄에도
신료들은 역적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당하나 당상이다 다 그러했다.
최명길과 함께 선택되어진 3인의 당하들도 그러했다.
차라리 죽음이 나았다.

임금은 최명길과 역(逆)을 도모했다.
최명길이 마땅히 따랐다. 그는 처음부터 역적이었다.
당하들도 당상들도 그의 죽음으로 청을 막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남한산성에 들어오는 길 부터 임금과 최명길은 함께 역(逆)을 도모했다.

남한산성에서의 출성은 '삼전도'의 치욕으로 결말을 맺는다.
하늘로 솟은 청의 황제(칸)에게 임금은 치욕으로 맞댄다.
임금의 가솔들이 청의 황제와 함께 청으로 들어갔고,
가는 길에 조선의 백성들이 그들을 배웅했다. 열렬히. 매우 열렬히.

임금은 도성으로 돌아갔다.
민초들도 제 길로 갔다.
남한산성을 떠났던 서날쇠도 산성으로 돌아왔다.
이시백이 도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상헌은 강화로 향했다.

그렇게 남한산성을 돌아왔다.

김훈은 책의 표지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1.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
2.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소설은 그저 소설로만 읽히지 않았다.
물론,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할 수 없었다. 김훈은 그러한 여지 조차 주지 않았으니.

책에는 여백이 없었다.
생각보다 두터웠지만, 책은 생각에 여백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서문에 남겨진 김훈의 말로 마무리를 하려 한다.
김훈의 말은 김훈으로서가 아니라 최명길로 더 많이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말로서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 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으리."


남은 것은 책을 읽는 또 다른 눈과 생각의 몫이겠다.
내게 남한산성에 대한 역사적 되새김을 남긴 것 처럼.
Posted by 푸른가을
2007. 6. 21. 18:35
굿바이, 게으름
문요한 지음/더난출판사
항상 부지런하다는 말 보다는 게으르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란 사람으로서 '굿바이, 게으름' - 게으름과의 이별은 참 달콤한 말로 보였다.
더불어 게으름과 이별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물음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책을 골라잡기 전, 이미 베스트셀러의 반열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리뷰를 잠깐 살핀 바 있는데 솔직히 그 리뷰의 내용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다시 방문해서 본다면 확인은 가능하리라. 또한, 그 리뷰로 인해 구입하게 되었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첫머리 부터 내 머리와 가슴을 사로잡았다.
그 동안 수많은 자기계발 관련 서적과 씨름하면서도 이렇게까지 붙잡아두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아마도 그 동안 내가 이런 책에 목 말라 있었거나, 지금의 상황에 알맞는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실상, 책의 내용은 작금의 자기계발 관련 서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전혀 차별점이 없지는 않다.

'굿바이, 게으름'은 먼저 게으름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하면서 시작된다.
게으름은 사람들이 흔하게 생각하는 늦장부림의 의미에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으름의 선택의 문제다" 라고 강하게 말하는 저자의 글은 내게 알맞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다! 게으름은 내가 선택한 것이다. 늦장을 부리거나, 시간 약속에 늦게 나가거나,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루는 등의 게으름은 내가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능동적인 선택은 아닐지 몰라도 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게으름과의 이별 문제는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고야 만다.
첫번째 장에서(책은 7개의 챕터로 나뉘지만 결국은 크게 2개의 장으로 나뉜다.) 게으름이 어째서 선택의 문제이며, 게으름이 비난 받아야 하는 문제가 아닌지를 이야기 한 나와 저자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게으름과의 이별을 단행할 것인가를 두번째 장에서 이야기 한다.

결국에 이야기는 이 두번째 장이다.
저자는 내게 10가지의 키워드를 준다. 이는 다음과 같다.

1. '하면 된다'가 아니라 '왜 해야 하는가!'를 발견하라.
2. 마음의 상태를 살피는 또 하나의 마음을 키워라.
3. 자신 안에 '더 큰 존재'가 있음을 믿어라.
4. 긍정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을 하라.
5. 자신의 강점과 재능에 기초하여 '큰 그림(비전)'을 그려라.
6. 운동과 휴식은 천연의 보약임을 명심하라.
7. 매일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자기의식을 행하라.
8. 중요한 일을 우선적으로 하라.
9. 계획과 일을 소화 능력에 맞게 하라.
10. 매일 한 가지씩 능동적 선택을 하라.
10가지의 키워드 중 일부는 다른 자기계발 서적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키워드들이다. 예를 들면, "5번의 비전을 그리라는 것"이나, "8번의 중요한 일을 우선적으로 하라" 같은 경우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법칙'과 같은 서적에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생각하고 이미 진행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굿바이, 게으름'은 내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잊었던 것을 새롭게 일깨워줄 수 있는 책이었다고나 할까?
우선적으로 , 큰 비전은 아니어도 작은 목표 하나는 세워서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1년 동안 10Kg의 감량 목표!!"

아마도, '굿바이, 게으름'을 위한 첫번째 도전이 될 듯 하다.
그리고 어쩌면 '굿바이, 게으름'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길런지도.. ^^
(이건 생각을 좀 해볼 문제이긴 하다..)


Posted by 푸른가을
2007. 6. 20. 11:17
올블릿2 설치 이벤트에 참가했고, 이벤트 당첨으로 인해 올블릿 티셔츠가 어제 도착했습니다.
사실 어제는 올블에 어떤 공지사항도 없어서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는데.. 많은 분들이 티셔츠가 도착했다는 포스팅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알았습니다. ^^;

오늘은 다행이도 올블에 공지사항으로 올라와 있네요.
어제 깜빡잊고 집에 가져가지 못해서 입고 출근하지는 못했고,
대신 펼쳐서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ㅎㅎ

올블 돈 좀 쓰셨겠습니다??
농담이고, 앞으로도 좋은 이벤트 & 좋은 서비스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잘 입을께요~~~


012



사족. 댓글달고 보니.. 딱 100개째 포스팅입니다.. ^^;


Posted by 푸른가을
2007. 6. 20. 08:53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프랭클린 플래너에서 우선업무를 정리하고
잠깐 데일리속지에 있는 명언을 보았는데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 포스팅으로 남겨봅니다.

"자신의 사고체계를 바꿀 수 없는 사람은 결코 현실을 바꿀 수 없고, 따라서 어떠한 발전도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의 대통령을 지내고,
197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집트의 정치인 '안와르 사다트'의 말입니다.
(안와르 사다트에 대한 프로필은 네이버에서 찾아왔습니다.. ^^)

이 말이 오늘 아침, 저에게 좋은 도전을 주는군요.

"내가 가진 사고체계를 바꿀 수 없다면 내게 어떠한 발전도 없을 것이다"라고 들립니다.
정해진 사고체계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내가 가진 사고체계를 바꿀 수 있어야만 현실을 바꿀 수 있고, 발전도 가능하다는 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 하루는 이 말과 함께 도전적으로 살아봐야 하겠습니다.

Posted by 푸른가을
2007. 6. 12. 10:43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
짐 트렐리즈 지음, 눈사람 옮김/북라인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 - 아이의 두뇌를 깨우는
<아이의 두뇌를 깨우는>이라는 부제에 눈길이 가는터에, 이제 막 돌이 되어가는 아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독서 습관을 길러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집어들게 된 책입니다.
지난 주 일요일부터 읽었으니 일주일을 약간 더 넘겨서 읽었네요. 매일 읽지는 못했지만 거의 매일 읽으려고 노력했고, 도전받으면서 읽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우리아이에게 책을 언제부터 보여주어야 하는 부분일 겁니다.
개인적으로도 어떤 책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읽어줘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그래서 주로 아이책을 고를 때는 먼저 선택하신 분들의 의견을 먼저보고 골랐습니다만..
가끔은 알맞지 않은 책인 경우도 많더군요. 그래서 더 고민되었습니다.
어떻게 , 어떤 책을 , 얼만큼이나 읽어주야 할 것인가.

짐 트렐리즈는 왜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지, 책 읽어주는 것이 어떻게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다양한 사례와 함께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사례를 보면 내 아이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더불어 참 대단한 부모들이라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
거의 매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한다는게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책 읽어주기가 주는 효용>
짐 트렐리즈는 책 읽어주기가 혼자서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역설합니다.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단어(읽지 못하거나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를 만나게 해주는 교량역할이며 새로운 단어를 처음 만나는 데이트 같은 기회로 이야기 합니다.
또한, 책 읽어주기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으로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얻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첫번째 이야기한 효과는 훗날 아이가 학교에 진학하고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빛을 발합니다.
더 많은 단어를 들어보고 알게 된 아이는 다른 과목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어내는 경우가 많았고, 책 읽어주기를 꾸준히 해온 아이는 혼자 읽기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러한 눈에 보이는 것(성적이나 여타의 능력) 때문에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으로서 아이의 정서에도 영향을 주게 되고 더불어 책을 읽어주는 부모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책은 언제부터 읽어주어야 하나?> 또 <언제까지 읽어주어야 하나?>
저자는 단연코 '지금'부터라고 말을 합니다..
당신이 지금 막 태어난 아이를 키우고 있다만 그 순간부터, 만일 당신의 아이가 초등학생이라고 한다면 또한 그 순간부터!
이 말은 빨리 시작하면 더 좋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언제 시작해도 조금 늦을 뿐이지 좋은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은 언제까지 읽어주어야 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중학교 진학시기 정도로 보는 듯 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읽어주기가 가능하겠지만, 혼자 읽기가 충분히 가능한 시기이므로 중학교 진학시기 정도가 알맞아 보입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정확지 않습니다.. ^^)

<어떤 책을 어떤 순서로 읽어주어야 하나?>
그 나이에 알맞는 책들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라고 저자는 말하면서 책의 맨 마지막 부분에 자신만의 권장도서 목록을 실어놓았습니다. 아쉽게도 원본 서적에 500여권의 책 목록은 국내에 번역된 100여권의 책만이 기록되어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번역자의 카페를 통해서 추가 되는 번역본에 대해서는 추가가 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좀 아쉬운 점은 있는 편이고. 이에 대해서는 국내의 도서 전문가나 어린이 독서 전문가들이 추천해주는 다른 책들을 추가해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은 번역자의 카페를 방문해 보고 특이한 점은 추가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마치며>
책을 읽는 내내 참 놀랍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단지 '읽어주기'만으로도 아이의 읽기능력이나 이해하는 능력이 커진다는 것이었다. 또한, 부모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아이의 능력이 결정되어진다는 점에서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더 커졌다는 것과 아이에게 '아버지'가 어떠한 존재인가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많은 부분 육아에 있어서 '아버지'가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최근의 경향은 아버지가 육아 속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꽤 있지만, 여전히 육아에 있어서 아버지는 먼 거리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아버지는 '굉장한' 존재임을 잊지 말고 아이를 위한 아버지들이 늘어나길 소원해보며. 우리아이에게도 좋은 아버지로, 멋진 아버지로, 존경받는 아버지로 보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에게 짧은 시간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다면,
이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떻겠는지?
Posted by 푸른가을
2007. 6. 4. 18:26

개인적으로 '일밤'은 자주 보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물론 가끔 '동안클럽'이나 '경제야놀자'가 흐르는 경우에는 흘러가는대로 보는 경우가 있지만,
몰카인 경우는 조금 달라서 몰카라도 시작할라치면 채널을 돌려버리는 탓이다.

이번 주엔, 어쩌다보니 몰카도 보게되었다.
경쟁 프로그램인 하이파이브는 '행복한여자'라는 드라마로 인해 결방인지 뭔지 안하는 듯 했고.
SBS는 잘 안돌리다보니 웃찾사가 하는 줄도 몰랐다. (몰카가 어느 정도 지나고서야 웃찾사로 채널을 변경했지만.)

아무튼 서론은 여기까지만 하고.

김제동에 대한 몰카는 생각보다 더 짜증났다.
아니, 어쩌면 김제동 몰카는 김제동을 띄워주기 위한 몰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신념과 확신에 찬 모습이며 소위 '김제동 어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화려하고도 논리정연한 언변!

김제동에 대한 모습은 참 멋있게 봤으나.
몰카는 억지 그 자체였다.

강의 중에 싸운다는 설정이라니.

말이 안나온다.

내가 다니던 얼마 안된 과거 시절에도 그런 경우는 없었다.

(1994년 내가 다니던 대학가는 평온 그 자체였고, 학생운동에 대한 열기는 시들었다.
물론 1학년이던 94년에는 간혹 최루탄 냄새가 학가를 누비기도 했지만.. 그뿐.
몇년이 더 흐른 뒤에는 그 흔적 조차 알 수 없었음은 그 시대를 대학가에서 보냈다면 누구나 알 것이라 생각된다.)

설사, 학생운동을 하는 학우(학생)가 있었다 하더라도 강의실은 '강의하는 시간'만큼은 교수 또는 강사의 것인데 어떤 학생이 침범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강의 전 동의는 커녕, 불쑥 머리를 들이밀고..
허허 거기다가 강의 듣던 학생과 불쑥 들어온 학생이 싸운다?

말도 안되는 설정이다.

게다가 저 정도라면(김제동이 학교에 온다고 하는데) 학교에 이미 광고는 되어 있을텐데.

이제 더 이상, 90년대식의 몰카는 웃음을 주기 어렵다.
뭐.. 그런 모습에도 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그렇다 손 치더라도.
억지 웃음으로 명맥을 이어나갈 생각은 그만두었으면 한다.


최근,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의 촬영 도중 몰래카메라임이 들키거나 예상했던 결과와 다른 결과로 촬영되는 경우가 많아보인다.
이는 컨셉 자체가 너무 억지스럽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이번 김제동의 몰래카메라의 경우도 그렇지 않았는가?
예상치 못했던 반응으로 더 억지스러워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경규의 MC로서의, 예능인으로서의 자질은 참으로 멋드러진다고 생각하지만.
몰카는 이제 좀 놔줘야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Posted by 푸른가을
2007. 6. 2. 18:18
장정일의 공부
장정일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제목이 상당히 도발적(?)인 '공부'.
오랜동안 베스트셀러로 올라있었으나 그로 인해 내게는 거리감을 두게 했던 책이다.

그저 장정일이 누군지도 모르는 무지한 독자로서 책의 표지를 열어보고나서야 이 책의 저자가 그 유명했던 소설의 저자였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러한 무지로부터의 시작이 장정일이 이야기하는 공부였을까?

한 외국인의 눈에서 시작되는 장정일의 공부는 왜 시작되었을까?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고나서야 이런 의문점을 가지게 된다.
물론, 해답은 모두 책 안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질문을 가져본다.

왜일까?
그는 자신의 시선과 생각에서 말할 수 있었던 것을
다른 이들의 책에서, 사상에서 찾아야했을까?

내 무지를 위해서였으리라.
왜 이렇게 서 있는가를 이야기해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네 녀석 , 왜 그렇게 있는가 라고 이야기해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장정일의 시선은 일반적이지 않다.
그래서 더 읽기 편했는지 모르겠다.
강요하려들지 않고, 구속하려들지 않는 문체이나 강요하고 구속한다.

장정일은 내게 큰 숙제를 하나 주고 공부를 계속해 나간다.
내가 지나쳐버렸던 이 나라의 역사와 인문학에 대한 공부거리들을.


사실상,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지만.
막상 글로 나타내려니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공부가 필요하리라.
어쩌면 내 공부가 계속되더라도 글로 나타내는게 힘들지 모르겠다.
그래도. 장정일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공부하고 있음을 글로 남겨야하겠다.



Posted by 푸른가을
2007. 5. 31. 11:44
갑작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나라당(소위 딴나라당)과 그 소속 의원들의 지지자들이 바라는 건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절대선(善)을 바라는게 아닐까?

예수는 이런 말을 했다.
"죄 없는자 돌을 던지라"

그런데..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죄 없는 자만 "나에게" 돌을 던지라'
응? 비슷해 보이네.

예수의 말과 한나라당의 말은 같은 조건일까?
그건 읽는 사람이 알아서 선택할 말이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는지..까먹긴 했는데..
아무튼.. 노무현이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딱 20년만 흐르고 지켜봅시다..

Posted by 푸른가을
2007. 5. 31. 11:04

정규리그 2위 팀인 수원과 1위팀인 삼성이 맞붙은 하우젠컵 플레이오프 경기는 시작전부터 정규리그 상위권팀간의 경기라는 점과, 성남의 무패 행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끄는 경기였습니다.

사실, 경기하는 시간에는 경기를 못 봤고..
드라마 다 끝나고 어쩌다 돌린 스포츠채널에서 경기의 후반부터 보게 되었습니다.
성남이 1:0으로 앞서고 있던 후반전의 후반부부터였지만. 경기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1:0으로 뒤지고 있는 수원은 계속 공세적인 입장을 취했고, 그에 맞서는 성남은 간간히 역습으로 맞서는 형국이었습니다.
후반 27분, 기다리던 동점골은 안정환의 발끝에서 터졌습니다. '에두'선수가 올린 크로스를 '나드손'선수가 상대수비와 경합하여 떨구어준 볼을 안정환이 강력하게 차넣었습니다. 컵대회 2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안정환의 골 이후, 양팀의 공격은 더 적극적이 되었고 양팀 모두에게 기회는 왔습니다.
성남에겐 아쉬운 기회들이 좀 더 많았습니다. 그중 가장 결정적이었던 남기일의 패스에 의한 김동현(정확하지가 않습니다.) 선수의 1:1 찬스를 놓쳤던 것이 성남의 패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수원도 후반 막판 백지훈 선수가 성남의 빈 골문에 차넣은 공이 오른쪽 측면으로 벗어난 것이 아쉬웠습니다. 이렇듯 후반 결정적 찬스를 놓친 양팀은 연장전으로 돌입했고, 연장전반이 시작되자마자 수원의 첫번째 공격에서 경기를 결정짓는 백지훈의 멋진 중거리슛이 터집니다.

양팀 모두 전후반을 최선을 다해 뛰어서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기에 집중력이 요구되던 시점이었습니다만 K-리그 최고의 수비라인을 구축하던 성남의 수비진의 집중력 저하가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백지훈은 수비 다리사이로 공을 밀어넣고 열린 공간에서 그대로 공의 바깥쪽을 강하게 차 넣었습니다. 성남의 김용대 골키퍼가 멋진 다이빙 캐치를 시도해봤지만 이미 골은 골문안으로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그야말로 멋진 골이었습니다.

이후는 계속적인 성남의 공격으로 이어졌고, 계속된 공격에 대해 수원의 수비진도 집중력을 잃고 골문 앞에서의 결정적인 반칙을 두 번 범합니다. 두번째 반칙은 패널티킥을 주었어도 아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페널티지역 외곽에서의 프리킥으로 이어졌고, 최성국의 프리킥은 수원의 수비수를 맞고 굴절되어 크로스바를 강하게 때리고 나옵니다.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고.

후반 중간에 보여진 볼점유얼 21 대 79가 보여주는 성남의 일방적으로 보이던 공격은 수원의 두번의 역습으로 무너집니다. 연장전반 종료직전 양상님의 가로채기에 의한 역습에 의해 허물어진 성남의 수비진은 나드손에게 첫번째 골을 내주고, 또다시 연장후반 나드손은 멋진 중거리슛으로 경기를 마무리 합니다. 결승골의 주인공은 단연 백지훈이었으나, 경기를 멋지게 마무리한 것은 나드손이었다.


비록 수원의 대승으로 끝난 경기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양팀 모두 후회없는 경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수원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지난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당항 수모를 갚을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대단한 승리였을 것이고
성남의 입장에서 본다면 연속경기 무패라는 부담을 '단지' 컵 대회에서 무너져버렸다는 점에서 정규리그에서 무패의 부담을 덜었다는 측면과 컵대회 탈락으로 인한 정규리그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안정환 선수의 골 소식이 기쁘고, 수원의 승리가 기쁩니다. ^^;
뭐..수원의 선수영입을 놓고 말들이 많지만 성남 역시 다르지 않고, 울산 등의 팀들도 그렇습니다.
지난 시즌까지의 수원의 행보는 좋은 선수들을 가졌지만 그에 걸맞지 않은 성적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지요. 그러나, 이번 시즌은 조금 다를 것 같아 보입니다.


아직 시즌이 좀 남았지만, 수원의 리그 우승을 기대 해 봅니다. ^^

ps. K-리그 팀을 부르면서 구단의 운영기업의 이름을 안 붙이면 좋겠네요.. ^^;
어서 빨리 팀의 연고주의가 뿌리내렸으면 합니다.. ^^;
(뭐.. 개인적으로는 모 기업 때문에 안 좋아하는 구단도 있습니다만... ㅋ)




Posted by 푸른가을
2007. 5. 27. 15:26
블로그 마케팅
식스 어파트 지음, 제경모 옮김/(주)씨엠투

제목의 그대로 블로그 마케팅이라는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고, 가볍게 읽히지만.
결코 내용 자체의 가벼움을 찾기 쉽지 않다.
일본 유수의 기업들이 마케팅 도구로 이용하는 블로그에 대해 다양한 사례들과 사례들에 대한 간단해보이는 분석이 돋보이는 이 책은 아쉽게도 자사의 블로그 툴인 'Moverble Type"에 대한 성공 사례집의 느낌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다양하다.

개인 기업에서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블로그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들이 보여주는 결과는 달콤하다.
대기업인 닛산 자동차나 리코가 상품을 알리기 위해 한시적으로 시작한 블로그가 성공하게된 부분이나, 조그만 치과의원이 블로그를 개설하고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효과를 보기시작하는 부분은 일본에서 블로그가 어느 정도의 위치인가를 가늠할 수 있게해준다.

또한, 이 책은 블로그가 마케팅 도구로서 어떻게 사용되어질 수 있으며
왜 블로그가 마케팅에 적합한 도구인가를 설명하고자 계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또한 각 아이템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나오는 Success Point를 통해 해당 사이트가 마케팅에 성공하게된 비결을 정리하는 부분은 추후 다시 책을 보게 될 경우 도움이 될 듯 하다.

블로그 마케팅! 이라는 책은 분명 블로그를 통한 마케팅이 어떻게 유용하며, 어떻게 운용가능한지를 잘 보여주는 예시의 측면에서는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다.
많은 부분 일본의 뒤를 따라가는 형상을 보이는 국내 기업의 특성을 본다면 충분히 블로그는 마케팅을 위한 도구로 유용할 것으로 생각되며.

지금부터, 블로그를 어떻게 마케팅 도구로 사용해야할지 심사숙고해봐야 할 때인 것 같다.



Posted by 푸른가을